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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원, 문태임, 박매영, 박수자, 박수현 가족

  • Date2020.03.29
  • 5822
박수자(의학 63졸)

박매영(약학 56졸), 박수자(의학 63졸), 故 박수현(약학 64졸). 이들은 이화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세 자매다. 지난 2013년 5월 제막한 이화여자대학교 기부자 명예의 전당에 언니 박매영 동문과 함께 이름을 올렸던 박수자 동문은, 이화를 사랑하셨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동생 의 이름을 이곳에 함께 남기고자 다시 큰 금액을 기부했다. 부모님과 이화출신 딸들의 이름이 모두 기부자 명예의 전당에 등재되는 최초의 사례를 만든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박매영 동문의 한국 방문 일정에 맞추어 두 자매가 이화 캠퍼스를 찾았다. 이번 기부는 삶이 곧 나눔 그 자체였던 故 박순원 회장과 故 문태임 여사의 삶을 함께 돌아보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의미와 감동이 있었다. 본교 이영회연합회 회장뿐 아니라 대한YWCA연합회 회장, 호수돈학원 이사, 정동교회 장로 등을 역임하며 활발한 사회봉사를 실천해온 문태임 여사의 든든한 버팀목은 남편 박순원 회장이었다. 

“아버지는 애국자이자 모범 시민, 그리고 선구자이셨어요. 어머니가 이 모든 사회 활동을 하실 수 있도록 전적으로 뒷받침해 주셨지요. 아버지가 이룩한 부를 어머니가 사회에 쏟아 부으셨다고 표현할 정도였는데, 아버지는 단 한 번도 뭐라 말씀한 적이 없으셨어요.” 


 

박순원 회장(1904~1995)은 당시로서 많은 부분에서 혁신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특히 여성에 대한 인식이 그랬다. 이화의 교육지침에 전적으로 동의하여 딸 넷 중 셋을 이화에 보냈고, 네 딸을 모두 유학보냈다. 여성이 밖에서 기를 펴지 못하는 걸 싫어했던 그는 딸들에게 여성으로서 선구자가 되고 리더가 되라고 가르쳤다. 어머니 또한 여자도 절대적으로 경제적 능력이 있어야 한다며, 딸들이 자력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독립심을 길러주었고 약대나 의대를 가서 전문가로서의 삶을 살 수 있도록 교육했다. 

 

무엇이든 새로운 문물은 적극적으로 먼저 도전해 보았던 박 회장의 개척자 정신은 개성에서 자동차면허증 1호 취득, 제1회 자전거 대회 참여, 그리고 직접 디자인한 이층 양옥집을 개성 2호로 건축했던 일들에서 잘 드러난다. “아버지는 발명가이기도 하셨어요. 인삼차를 최초로 발명하셔서 일제 치하 한국인으로서는 매우 받기 어려웠던 발명특허(조선인삼엑기스분말제조법, 발명특허 1140110호)를 받아 수출을 하셨어요.” 박 동문 자매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 동안, 그들의 표정은 자연스레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과 그리움으로 가득찼다. “무엇보다 아버지가 훌륭하셨던 것은, 6.25 때 생활터전을 잃은 사람들을 위해 그 특허권을 친히 포기하셨던 일이에요. 우리가족도 집을 버리고 피난을 와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아버지는 나라와 공동체를 우선 생각하는 진정한 애국자이셨어요.” 

 

동시에 따뜻하고 사랑 많은 남편이자 아버지였던 그에 대한 일화는 계속 이어졌다. “집안에는 온갖 발명품이 많았어요. 여자가 앉아서 빨래하는 걸 좋지 않게 보셔서 서서 빨래할 수 있는 싱크대를 고안해서 만들기도 하셨어요.” 1930-40년대, 보통의 가정은 아버지 따로 아이들 따로 식사를 했다. 집안의 경제권도 남자가 갖고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박 자매의 집은 달랐다. “우리집은 둥근 식탁에 온가족이 모여 함께 식사를 했고, 이 시간에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무역 회사를 운영하시며 회식이 많았는데도 5시만 되면 집에 오셔서 가족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셨어요. 그리고 특이하게도 어머니가 모든 경제권을 갖고 계셨어요. 당시로서는 매우 드문 일이었지요.” 

 

이처럼 박순원 회장은 아내 문태임 여사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존중했다. 남편의 든든한 지지가 있었기에 문태임 여사는 바쁜 남편을 대신하여 당시 취득하기 매우 어려웠던 제약면허증을 취득하여 남편 회사의 제조주임으로 일하기도 했다. 모교인 개성 호수돈여고를 대전에 재건하는 데 산파역을 맡았고, 송전장학회를 설립하여 많은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대한YWCA, 이화여대, 정동제일교회 등에서 문태임 여사가 베풀었던 사랑과 나눔은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이다. “어머니는 똑똑하고 당당한 여성이셨어요. 아버지를 처음 만난 선 자리에서 수첩을 들고 대답을 받아적으며 아버지 호구조사를 하셨다는 일화는 두고두고 이야기된답니다. 보통 남자들 같았으면 도망갔을 텐데,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에 ‘대단히 똑똑한 여성’이라며 마음에 들어 하셨다고 해요.” 

 

박수자 동문은 일년 터울로 함께 학교에 다녔던 박수현 동문이 기억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도 함께 전했다. “수현이는 이화 시절 약학대학 메이퀸 후보가 되었을 만큼 미인으로 남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었어요. 미국 LA의 큰 종합병원에서 약사로 근무하면서 빈틈없고 능력있을 뿐 아니라 주위를 배려하는 인간적인 사람으로 참 많은 이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었지요.” 박매영, 박수자, 박수현 세 자매를 이화에 보냈고, 또 사회의 큰 일꾼으로 봉사할 수 있도록 교육한 박순원 회장과 문태임 여사의 아름다운 나눔과 삶이 이화 가족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되기를 바란다.